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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 인스타그램 계정이 세 개다. 하나는 중,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만들어진 관계의 사람들 모두에게 오픈된 계정이다. 다른 하나는, 내가 소속된 단체의 계정.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최근에 만들었다. 답답해서, 답답해서 만들었다. 인스타그램에 일상을 올린다는데, 난 첫 번째에 말한 계정에 일상을 올리지 못한다. 내 몇몇 일상은 스토리속 ‘친한친구들’에만 존재한다. 내 친한 친구 몇 명은 ‘친한 친구들’에 없다. 일상을 올리려다가 계속해서 머뭇거리는 내가 싫어서, 난 새로운 내 공간을 만들었다. 이게 내가 살아남은 공간이고, 살아가는 공간이다.
  • 복잡하고 시끄러운 종로3가의 사계절의 모든 모습을 나는 좋아하고, 아마 그 공간이 내 인생 대부분의 취기를 간직하고 있기에 더 늘 애틋하다. 특히 나는 그곳 골목에 찌든 오줌 내와 싱거운 맥주, 그리고 갓 잡아 튀겨낸 오징어 튀김을 가장 좋아한다.
  • 넷플릭스가 나의 ( ) 공간이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외국영화를 다운받아 보기 시작했다. TV에 나오는 사람들의 삶은, 어딘가 가짜 같아 보였다. 어? 내 삶은 저렇지 않은데, 나는 저런 곳에 살고 있지 않은데. 처음으로 본 퀴어영화가 뭐였는지 기억은 나질 않는다. 다만 그곳엔, 내 삶과 닮은 세상이 펼쳐져 있었고, 처음으로 내 다음을 가늠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롤모델은 어쩐지 내가 도저히 잡을 수 없는 지점들이 있었다. 그렇게 자라온 나는 여전히 TV를 보지 않는다. 이젠 넷플릭스를 본다. 그 안엔 나와 닮은 삶들이 있다.
  • 많은 추억과 많은 상처들과 외로움, 특별함, 배신, 사랑했던 기억, 아쉬움, 새로운 삶, 커밍아웃, 슬픔, 설렘, 서울역, 응암역,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잠실새내역, 애틋한 간절함이 남아 있는 나의 공간. 나의 방.
  • 나의 편안한 공간은 새벽공기와 함께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아무도 없는 공용테라스에 있는 긴 의자에 누워있는 것.
  • 내 방 벽 너머로 들리는 가족의 목소리. 그곳은 (일상의) 공간. 내가 머무는 작은 나의 방은 (일상의) 것이 되지 못한다. 이곳에서 나는 스스로의 비일상에 대한 소명을 준비한다. 그렇다고 내 방이 (숨 막히는) 곳이냐 묻는다면 그렇진 않다. 비유를 하자면 내 방은 시크릿 탭 같은 것이다. 종종 별것 아닌 검색에도 시크릿 탭을 쓸 때가 있다. 탭만 끄면 그간의 인터넷 활동을 없던 것으로 할 수 있다. 나는 유튜브 검색어 기록 기능도 해제해 놓았다. 종종 나는 ‘레즈’라고 검색하고, 지루한 레즈비언 유튜버의 영상을 시청한다. 나의 방은 딱 그런 곳이다. 내 방에서는 어떤 유의미한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걷는다. 불안한 마음을 덜기 위해 걸으러 나가면서도 목적지가 없으면 그게 또 불안하다. 늘 어떤 목적, 지금 와서 보면 어떤 허상을 좇기에 바쁜 삶을 살아온 후유증일 것이다. 그래서 향하는 곳이 한강이다. 얼마가 걸리든 상관없이 가까운 한강공원으로 걸어간다. 도착해서는 눈앞에 한강만 보일 정도로 강과 가까운 곳에 자리 잡는다. 몸에 힘을 빼고 표면의 울렁거림을 쳐다본다. 흘러가는 물줄기에 내 일상의 불안들을 던져넣는다. 그리고 그게 흘러가는 걸 쳐다본다. 정확히는 그게 내 머릿속에서 나와 저 멀리 흘러가고 있다고 상상하는 거다. 그렇게 잠시라도 나는 불안으로 점철된 일상으로부터 탈출한다. 잠시나마 지만.
  • 내가 (편하게) 여기는 공간엔 지붕이 없다. 고작해야 청결한 병원에서 진료 대기 중일 때나 고해성사를 앞둬 잠시나마 내가 온전히 나로서 반성하며 머물 뿐, 마땅히 나의 공간으로 (구별할) 수 있는 곳은 사실 지붕이 없는 그런 (불안한) 공간이다. 얼마 전에 서울숲공원 꽃사슴 목장에 갔다. 하루해가 가장 길다는 하지였음에도 하필 가장 컴컴한 시간에, 또 하필 곧 목장의 문을 닫을 시간에 들렀다. 그래서 정작 목장에 가서 내가 본 거라곤 이따금 빛에 반사돼 하얗게 반짝이는 수십 개의 꽃사슴 눈뿐이었다. 그래도 여름밤의 느긋함과 묵직한 농장 냄새는 꽤 평화로웠다. 나는 남자고, 요새 남자를 만나 교제하고 있다. 그런데 마침 우리가 교제를 막 시작할 때 코로나 펜데믹 상황이었고, 이후 단둘이 어떤 지붕이 있는 공간에 들어가는 건 무척 꺼려졌다. 혹여라도 우리의 동선이 누군가와 중첩돼 추적을 당하면 어쩌나 하는 게 매번 그 이유다. 물론 우리 사이를 그저 친구 관계라 에둘러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왠지 그러고 싶진 않다. 그래서 요새 그를 만나면 강아지 산책 겸 그냥 무작정 정처 없이 걷는다. 탁 트인 공간이니 편히 손을 잡는 것조차 엄두 낼 수 없지만, 그래도 지금으로선 최선의 공간이 내겐 이렇다. 막상 편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막연히 불안하지도 않은 그런 길을 걷는다.
  • 늦잠이었다. 왜 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날 아침 유독 알람 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창을 뚫고 들어오는 강렬한 햇살에 눈을 뜨고 말았다. 말도 안 되는 밝기의 빛에 1초도 채 되지 않아 좆됐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다. 정말 욕이 절로 나오는 명백한 지각이었다. 양치질만 급하게 하고 튀어나와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너무 쓰레기 같아서 웃음이 났다. 우리 원룸촌 인근 공영주차장에 대놓은 내 차에 후다닥 타서 시동을 걸었다. 그때였다. 맞은편 차 밑에 강아지 한 마리가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눈이 마주친 기분이다. 아니, 마주쳤다. 더럽게 꼬이는 아침이다. 차에서 잠깐 내렸다. 강아지는 내가 다가오는 쪽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애기야 여기는 위험하니까 밖으로 나와!” 그런데 어쩜. 결국 한발 두발 나오는 그 개가 다리를 심하게 절면서 나왔는데 다리 한쪽이 말도 안 되게 부서져 있었다. 충격적으로 끔찍한 모습에 순간적으로나마 내가 며칠 임보를 할까 했던 생각은 쏙 들어갔다. 잠깐 쓰다듬곤 더 이상 해줄 일이 없어 안전한 곳으로 옮겨주곤 다시 차에 탔다. 손이 조금 떨리는 것 같았다. 백미러에 비친 내 모습은 여전히 쓰레기 같다. 내리지 말걸. 차라리 모른 척할 걸. 스스로 생각해봐도 같잖은 위선, 가식적인 온기. 여하튼 지각은 피할 수 없었고 직장에 별다른 핑계는 대지 않았다. 하루종일 강아지의 축 처진 표정이 떠나지 않았다.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도 모를 무렵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어째선지 매일 가던 그 주차장에 가지 않았다. 가지 않을 테다. 마치 몰랐던 것처럼, 못 봤던 것처럼 행동할 것이다. 그날 밤 침대에 누워 눈을 감자 어둠 속에서 아련하게 콩알 같은 눈 한 쌍에 오히려 불이 들어왔다. 버리고 찢겨지고 뒤틀린 패잔병 같던 너. 그렇게 위험한 구석까지 내몰린 너의 처지를 누구보다 절감할 나였지만, 나도 내 삶과 공간에 숨이 막히는 걸. 나도 행복하자. 내일은 절대 지각하지 말자는 강박에 그날 하루종일 잠을 설쳤다. 그러다 언제, 얼마나 잠들었을까. 6시 반에 눈을 떴고 세면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어제보단 나은 느낌이었다. 평화롭게 출근 준비를 하고 1층에 내려온 순간 기겁하고 말았다. 분리수거장 앞에 고요하게 누워있던 너. 나도 모르게 달려가 끌어안고 애기야만 외치다 어느새 엉엉 울고 말았다.
  • 나는 입시 미술 학원에서 강사로 일한다. 강의실은 긴 직사각형의 ‘ㄴ자’ 교실이다. 한쪽이 길고 한쪽이 짧아 안정적이지 않은 ‘ㄴ’이다. 투명한 유리로 된 학원 문을 열고 짧은 복도를 지나면 강의실이 나온다. 강의실 문은 유리문이다. 내가 있는 강의실은 그리 크지 않은 학원에서 처음으로 만날 수 있는 강의실이다. 강의실 문은 대개 열려있고, 데스크에서의 말씨가 내게 들릴 정도로 강의실과 학원 정문은 가깝다. 사람은 알 수 없는 것을 불안해한다. 불투명할수록 미지의 세계라 여길수록 두려워하고 불안해한다. 투명한 강의실은 내게 너무 불투명하다. 투명하게 개방된 공간에서 나는 학생들과 방문객, 동료 선생님과 학부모에게 훤히 들여다보인다. 내 사소한 말투 별거 아닌 몸짓마저 투명하게 보여진다. 내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공간에서 정작 나는 남들을 훤히 들여다볼 수 없다. 내가 추측하는 것들이 모두 맞아떨어지지 않는 상황 속에 있다. 온갖 변수들과 비정형화된 사건사고가 나를 들여다본다. 그곳은 내게 불안한 공간이다. 불안함에서 가장 쉽게 벗어나는 방법은 남들이 나를 볼 수 없게 하는 것이다. 내가 불투명해지면 내 불안함은 증발되어 날아간다. 불안함의 강의실에서 내가 불투명해질 수 있는 공간은 사소하게도 작은 책상 하나다. 나는 그곳에서 가장 안정적인 곳에 내 자리를 잡았다. 선과 선이 만나는 ‘ㄴ’의 가장 구석진 곳. 가장 안쪽에 위치한 책상 하나. 그 교차점에서 나는 양쪽 선을 모두 바라볼 수 있다. 그 사소한 공간은 나를 강의실의 투명함 속에 녹아들게 하여 불투명하게 한다. 그 사소함에서 나는 양쪽 모두를 들여다보며 전체의 흐름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 불안한 공간은 내 사무실, 내 방이다. 시니어들도 둘이서 한방을 쓰는데 대체 왜 꼬꼬마 주니어인 나에게 방 하나를 통째로 내주었는지 알 수가 없다. 파트너는 나를 찾아오지 않고, 나도 찾아갈 일이 없다. 나는 어디 가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누구에게 가서 무엇을 배워야 할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매일매일 그 방으로 출근하니 일단 내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공간이기는 한데, 내가 일을 하고 서면을 쓰며 숨 쉬는 공간이기는 한데 어디 가서 무엇을 가져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 나를 너무 불안하게 만든다. 오히려 내가 이해받지 못하는 곳에 가서 아무 가면이나 쓰고 모두가 방 하나씩을 통째로 쓰면서 일을 마구 배당해주는 공간에 있으면 편할까? 엄마는 내가 여기서 일을 시작한 게 다행이라고 하는데 나는 그런지 모르겠어. 나를 갈아내지 않으면 불안해 온 시간이 너무 길어서 이제 뭐가 불안한지도 모르겠어.
  • 나는 나의 마음의 공간이 나를 숨 막히게 하기도하고 편하게 느끼게 한다. 내가 갖는 관념 속 나를 밀어 넣고, 수많은 규칙을 지킨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나는 편안하다. 나의 모든 건 나로하여금 통제되기 때문이다. 나의 마음속 지배적 공간은 나를 일상에서 도망칠 수 있게 하는 기회를 준다. 그렇게 나는 나의 공간에서 나를 다스리고, 버텨낸다.
  • 나의 숨쉬는 일상적인 흔한 공간 1. 매일 들고 나는 도시의 관점에서, 나는 부동산의 핵심정책이 주목하는 은마아파트에 살고 있고, 대치동에 40년 가까이 살았다. 집과 아파트, 교육에 얽혀 있는 사람들의 욕망을 매일매일 경험한다. 다 컸지만 아직도 경쟁하는 것 같다. 같은 공간을 아침 7시, 9시. 오후 1시, 5시 이렇게 경험하는 것은 무척 다르다. 아침 7시나 8시에는 중고등 학생이 출근하는 시간이며, 9시에는 유치원 애들이 주로 등원을 한다. 같은 길을 나의 성장기와 아이의 성장기에 경험하는 것은 같은 곳을 다르게 보는 과정인 것 같다. 2. 페이스북은 미술계 네트워킹의 핵심으로 나의 가치를 좀 더 높을 수 있는 방안으로 마련한 공간이다. 일상의 공간이자 네트워킹의 공간이다. 3. 인스타그램은 편안한 공간에서부터 네트워킹의 공간까지 아우르는 공간으로 계정이 5개이다. 프로젝트 할 때마다 새로 만들어서 다소 관리가 피곤하다.
  • 나의 공간은 집, 내방이다. 뻔한 말일 수 있지만 집이라는 공간으로 내가 쉴 수 있고 그 안에 내 방이라는 공간에서 여러 가지 일들을 한다. 티비를 볼 수도 SNS를 할 수도 책을 읽을 수도 잠을 잘 수도 전화를 할 수도 카톡을 할 수도 음악을 들을 수도 사소한 행동들이지만 이런 많은 행동들이 쌓여서 때론 기억에 남는 일이 될 수도 그런 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기억이 안 나는 순간도 있다. 그런 작은 행동들을 보여줄 수 있는 집이라는 공간에 내가 살아간다는 게 행복할 때가 많다. 혼자 있고 싶을 때 내 방이라는 공간에 들어가 생각에 잠기고 그 생각이 정리되면 다시 집이라는 큰 공간에 내가 다시 나오게 되고 평생 이런 삶을 살 수있는 집이라는 공간이 좋다.
  • 부모님이 항상 말씀하시던 안전한 것들이 있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잘하게 되고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으며 대기업에 취업할 수 있다. 5년 정도 일하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2명쯤 낳아 그 낙으로 살아가면 된다. 하지만 열심히 한 공부가 잘하게 되진 않았고 다른 걸 잘해서 들어간 꽤 괜찮은 대학에선 돈 없는 사람은 할 수 없는 공부를 가르쳤다. 한국에서 아이를 갖는 것과 결혼하는 것 모두 불가능한 나는 어느새 도망치는 사람이 되었다. 흔히 목표도 없이 도망친 사람은 무너지기 쉽다 한다. 말이 겨우 통하는 그곳에 가서 나는 알았다. 난 잘못이 없다. 나이와 성별 말고 다른 것을 봐주는 사람들 덕에 난 돈을 벌고 혼자서도 잘 사는 사람이 되었다. 도망친 줄 알았는데 탈출하는 중이었다.
  • 나는 내 마음속이란 공간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마음속은 마치 세상이 생겨나기 전 모든 것이 혼재된 어둠과도 같다. 그러면서도 각각의 마음은 나름의 칸이 쳐진 공간에 있다. 특정 순간이 되면 이 마음 하나하나 또는 혼재된 덩어리가 스크린에 투영된다. 투영되는 마음은 혼자의 의지로 조절하기 힘든 것이라 가끔은 이 마음에서 멀리 도망치고, 탈출하고 싶어진다. 내가 이런 마음을 가지는 것이 불쌍하거나, 괴리감이 느껴질 때 말이다. 그러나 마음은 순간순간 바뀌어 무대에 조명 하나 바뀌었다고 짓누르던 마음이 사라진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우면서도 사소한 나의 마음이여.
  • 나의 (사소한, 벗어나는, 사소한) 공간. 작년 이맘 여름날, 나는 부지런한 다람쥐가 꼼꼼히 서랍을 뒤지듯 허겁지겁 진땀을 흘려가며 그 사람과 함께 사진을 정리하고 있었다. 사소한 이유로 반했고 사소한 실수의 흔적은 우리의 상징처럼 여겨지곤 했는데, 그 모든 일들은 사실 그저 사소한 것들, 당신이라는 낭만의 외투를 벗어둔 채 만나던 우리. 둘 중 누가 벗어두며 서로의 얼굴을 챙기러 왔을까. 챙기러 왔을까? 갈등과 좋아짐은 매번 동시에 찾아왔고, 대화는 얼굴이 아닌 책상 위 작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한 발자국 늦어가며 다른 시간에 대화를 주고받았다. 반추하노라면 서로 동시에 접어두고 얼굴을 보러왔겠지. 그렇게 지난여름과 겨울 아쉬운 마음 잔뜩 새겨두고 접어둔 작년. 올해 초부터 난 다가오는 꽃가루를 그러모아 아직 오지 않은 여름을 기다리는 동안 세고 있을 테다. 나는 또 책상 앞에 앉아 편지 안에 모아둔 꽃가루를 하나씩 끼워 곧 부풀 마음을 누군가와 함께 또 서로 나누며 살아가겠지!
  • 최근에 부모에게 커밍아웃하였다. 내가 대학원 진학 후부터 약 5년간 가족들에게 냉랭했던 이유가 나의 성 정체성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말 그 이유뿐이었겠는가?’에 대한 의심이 살짝 드는 요즘이지만 그건 어쩔 수 없고. 엄마 아빠가 나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내가 유사 전환치료 시설에 3개월가량 상담을 받고 내가 진정한 게이인지 판별 받아야 한다고 한다. 난 나를 사랑하니까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했지 뭐. (폭력)의 공간 카카오톡의 알림이 뜬다. ‘아들, 이 세상에 엄마 아빠보다 너를 더 잘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없어~ 작은 일이건 큰일이건 모두 엄마 아빠와 상의해서 결정하길 바란다~’ 카카오톡은 (폭력)의 공간. 카카오톡은 (가스라이팅)의 공간. 살아본 적 없는 휴대전화 없던 시절이 그립다. 왜 나는 메시지를 받아야만 하는가? 보기 싫은 대화방이 목록 상단에 위치하는 게 싫어, 애꿎은 지인들에게 카톡을 보낸다. 일단 정체성을 알렸으니 가족관계가 화목해져야 내가 제시한 논리가 맞는데, 잘 될지는 모르겠다.
  • 기억나는 (키스)했던 공간. 첫 (키스) 공간. 왕십리 한양대 근처 청계천 팔각정 옆 계단. 거의 회기동 단편선 급으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는 낭인이 팔각정에서 한동안 노래를 불렀다. (키스) 했던 가장 넓은 공간. 여의도 어디 한강 둔치 다리 밑 경사진 콘크리트면 위. 자전거 끌고 가는 사람, 이성애자 커플들, 아이들, 강아지, 아저씨, 젊은 남자 둘, 이것이 동성애다 몸으로 외치듯 다소 보란 듯이 길고 격렬하게 서로의 입술을 탐했다. 자유로운 우리를 봐 자유로워. 빗속 (키스) 공간. 남산타워에서부터 힐튼까지 내려오는 산책로. 함께 남산을 걷는데 갑자기 비가 왔다. 빗속을 걷다 키스하다 뛰다 비를 피하다 비를 맞다 쫄딱 젖어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 내 부모는 나의 인스타그램을 염탐한다. 그게 옳건 그르건 ‘내가 우리 아들 뭐 하는지 궁금한데 그것도 못 보니?’ 할 게 뻔하니까 딱히 보지 말라고는 하지 않는다. 부모에게 커밍아웃하고 나서 그들은 힘들겠지만 나는 딱히, 자유롭다. 보란 듯이 인스타그램에 나의 정체성을 표현한다. 한명 한명 지인들과 만나 나의 정체성을 알리는 것보다 오히려 인스타그램을 통해 불특정 대다수에게 한 번에 알리는 것이 꽤 편리한 카타르시스가 있다. 지금 인스타그램은 지금 내 (정체성 해방)의 공간. 아니 근데 또 부모가 내 계정을 본다니까, 또 인스타그램은 나의 (시위) 공간이다. 본다니까, 볼 테면 봐라 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무지개 백 개 올렸다.
  • 나의 편안한 공간이라. 침대 위에서 자위를 제일 많이 했으니 거기가 제일 편한 공간일 듯하네. 아무도 없으면 더 크게 소리를 낼 수 있으니 더 좋고. 그럼 야외에서 할 때는 거기가 편해서 했느냐? 뭐 꼭 편한 공간에서만 그러는 건 아니니까. 마치 개들이 영역표시를 하듯 낯선 곳에 남기는 나의 흔적이랄까? 거기에서 오는 스릴과 충족감? 그러면 그 공간은 나에게 특별해지거든. 아무리 사소한 곳이었어도 기억이 나더라고. 뭐 그렇다고.
  • 난 지금 까치산 아래 원룸에 살고 있다. 이 집의 바닥은 나처럼 끈기가 없는 편이다. 빨리 달아오르고 빨리 식어버리는. 발아래가 주차장이다 보니 단열이 잘 안 되었던 탓이다. 보일러를 떼면 금세 후끈해지고, 꺼버리면 잠시도 참지 못하고 온기를 내뱉어 버린다. 과거, 연애에 임했던 나와 닮아 있고, 흥미로운 일을 처음 접했을 때의 나와도 어느 정도 닮아 있었다. 침실은 최초엔 베란다와 맞닿아 있다가 지금은 방의 중간쯤 불쑥 자리 잡고 있다. 겨우내 들어오던 한기를 도저히 견디기 힘들어 봄이 오기 전 나는 침대의 위치를 조정했었다. 싸구려 침대라 늘 달콤한 잠을 기대할 순 없었지만. 나는 이곳에 누워 정말이지 많은 생각을 했다. 아마 내가 이 집에서 가장 오래, 또 가장 깊게 정을 주고 있는 곳일 것이다. 부엌은 이 집에서 유일하게 그 모습을 감추고 있다. 마치 동굴처럼 좁고 길게 들어가 있어 처음엔 답답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지내면 지낼수록 나는 이 분리된 공간을 마음에 들어 했다. 며칠간 방치해둔 설거지 더미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누군가 요리를 할 때면 솜씨 좋은 쉐프의 음식을 기다리는 손님처럼 늘 설레는 마음으로 누군가의 정성을 기대했었다. 베란다는 이 집에서 제일 홀대 받는 곳이다. 창고 같기도. 어쩌면 죽어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나에게 쓰임을 다한 물건들은 쓸쓸하지만 이곳에서 시한부의 환자들처럼 지내고 있다. 어느 날 부서져 버린 컴퓨터 의자, 집과 어울리지 않아 외면당한 서랍장, 다양한 생활 쓰레기와 재활용품들까지. 나에게 버림받은 모든 것들이 이곳에서 운명을 함께 한다. 한때는 지난 여자친구의 작업실이기도 했던… 여러모로 지금은 죽어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나는 아주 가끔 외박을 할 때를 제외하곤 매일 이곳에서 지낸다. 내가 살게 되어 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나를 점점 닮아 갈 수밖에 없는 공간. 이곳을 방문했던 사람들은 애써 내가 표현하지 않았더라도 나를 만져보고 경험하고 냄새 맡고 갔을 것이다.
  • 이상과 이성이 공존하는 답답하고 공허한 공간. 나라는 자신 안에 담겨진 공간을 마주한다. 나는 어릴때 발레리나가 될꺼야. 나는 어릴 때 가수가 될꺼야. 근데 수입은? 먹고 살 수 있을까? 과연 내가 유명해질 수 있을까? 예전엔 멋모르던 생각을 이젠 이성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이성? 이성이란 무엇이였던 걸까? 지금도 이상과 이성은 어디에선가 항상 소리 없이 경쟁하고 있다. 경쟁의 흐름. 공존할 순 없을까? 내 안의 답답 공허한 공간이 사라지길 바라며.
  • 요즘 롤 채팅장은 나의 즐겁고 안전한 (커밍아웃) 공간이다. 롤에 접속해서 게임을 시작한다. 채팅창에 ‘안녕? 난 게이야~’를 입력한다. 게임 못하는 사람 특징이 게임보다 채팅치는 것을 좋아하는 거지만 재미있으면 그만이니까. 비록 언어폭력이 있을지언정 게임에 참여한 모두가 게이라는 단어에 반응한다. ‘어~ 똥꼬충 꺼져~’, ‘난 상관없는데~’, ‘진짜? 남자를 좋아한다고?’. ‘나도 게인데 어디 살아?’, ‘탑이야 바텀이야?’, ‘여자랑은 섹스 못 해?’ 한국 남초 커뮤니티라는 넓고 썩은 웅덩이에 귀여운 파장을 일으키는 자그마한 조약돌이 되길 바라며 오늘도 채팅창에 ‘안녕? 나는 게이야~’를 입력한다.
  • 다들 여기, 이 시간, 이곳에 집중하라고 한다. ‘일상의’ 해야 할 일들을 끝내고 잠자리에 누우면, 어딘가로 ‘도망치는’ 나를 상상하곤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이후로 어디 먼 곳으로 이동하는 것은 꿈만 같아졌다. 현재를 ‘벗어나는’ 일이 가능할까? 불확실한 미래이기에, 더욱 현실에 발을 딛고 살아야만 한다.
  • 나한테 특별하고 편안하지만 사소한 공간은 창가다. 그리고 방 전체가 보이는 한 방의 모서리이다. 사소한 공간이고 많은 곳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될지 몰라도, 나한텐 안정감을 주는, 내가 나이고 오직 나일 수 있게 해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창가는 방안에서 보기 힘든 걸 보여주는 곳, 모서리는 방 한가운데서 볼 수 없는 걸 볼 수 있게 해주는 공간이다. 그런 공간에 있는 나는 다른 때의 나보다 특별해질 수 있는 공간이다. 거기에 있을 땐 무슨 생각이든 다 소중하고 중요한 생각 같이 느껴진다.
  • 거리에서. 발라드 음악이 나올 것만 같은 거리에서 창문으로 바라보는 거리에서 사람들이 바쁘게 지나가는 모습, 웃고 있는 미소, 지쳐있는 표정, 수다 떨기 바쁜 목소리, 커플들이 잡는 깍지 손, 모두가 같이 공유하는 혹은 공간일 수 있는 거리에서 나는 추억을 생각하기도 한다. 잘 지내고 있나, 어떻게 살고 있을까, 에이 알 게 뭐야. 그땐 참 좋았던 순간도 많았는데. 보고 싶다 아니 그 행복했던 순간이 그립다.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까. 거리에서 사소한 것도 웃고 다녔던 거리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걷고, 거리에서 업무도 처리하고, 거리에서 울어보기도 하고, 거리에서 박장대소도 해보고,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치기도 하고. 거리가 주는 다양성들이 울고 웃고 행복하고 괴롭고 즐겁기까지 하다. 같이 공유하는 거리가 저마다 생각하는 부분이 다르듯이 그 순간의 추억은 내 공간이 된다.